인공지능이 내린 판단에 따라 사람의 삶이 바뀌는 시대입니다. 병원에서는 AI가 질병을 진단하고, 금융회사는 AI를 통해 대출 심사를 진행하며, 기업은 AI 기반 시스템으로 사람을 채용하거나 해고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AI가 틀렸을 때, 도대체 누가 그 책임을 져야 하는가?기계가 결정을 내리기 시작하면서 사회는 새로운 윤리적 공백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인간과 기계 사이, 시스템과 프로그래머 사이에서 책임이 흐릿해지는 '책임의 사각지대'가 현실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AI가 내린 결정, 그것은 판단인가?
AI의 '결정'을 우리는 종종 인간의 '판단'과 동일시하곤 합니다. 병원에서 AI가 질병을 진단하고, 법률 시스템에서 AI가 판결의 가능성을 예측하며, 기업에서는 AI가 지원자의 이력서를 자동으로 평가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얼핏 보면 인간의 전문적 판단을 대신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AI의 결정은 판단이 아닌, 통계적 계산 결과일 뿐입니다.AI는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결정을 내리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것은 결국 사람이 수집하고 설계한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특정 확률값을 도출하는 자동화된 시스템입니다. 예를 들어, 의료 AI는 수천 장의 엑스레이 이미지를 학습하여 암일 확률이 높은 패턴을 찾아냅니다. 하지만 이 AI가 “이 환자는 암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곧 절대적인 진실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이 이미지가 과거 암 환자와 유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확률에 불과한 판단 결과입니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AI는 그 결정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판단은 윤리적, 사회적 책임을 전제로 하지만, AI는 책임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비판단적 기계'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AI의 판단을 "객관적"이고 "공정한" 것으로 신뢰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매우 위험한 오해입니다.더 큰 문제는, AI가 사용하는 데이터 자체가 인간의 편견이나 사회적 불균형을 내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AI는 그럴 의도가 없었더라도 차별적이거나 왜곡된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잘못된 판단이 현실에서 실현될 때, 우리는 도대체 누구에게 이의를 제기하고, 어떤 기준으로 책임을 물어야 할까요?결국 AI의 결정은 판단이 아니라 계산된 추론입니다. 판단이라는 단어에는 직관, 맥락, 경험, 책임, 감정 등 다양한 인간적 요소가 포함되어야 하지만, 현재의 인공지능은 이러한 요소를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AI의 결과를 도움은 받되, 최종 판단은 인간이 책임지는 구조로 설계해야 합니다. 기술은 도구이지, 판단의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법은 따라오고 있는가?
AI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진보하고 있지만, 이를 규율할 법적 틀은 여전히 기술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국가들이 AI 관련 법제도 마련을 서두르고 있지만, 법이 AI를 다룰 수 있는 언어와 개념 자체를 아직 정립하지 못한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EU)은 ‘AI 법안(AI Act)’ 제정을 통해 고위험 AI의 개발 및 사용을 규제하려 하고 있으며, 투명성과 설명 가능성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한 걸음 나아간 시도이긴 하지만, ‘책임 소재’를 명확히 규정짓는 데에는 여전히 많은 한계가 있습니다.특히, AI의 판단 오류로 인해 발생한 피해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경우, 법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 AI의 개발자와 사용자 중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 AI가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내놓았다면 이는 불가항력인가, 과실인가?
- AI가 자율적으로 학습한 결과의 법적 귀속은 누구에게 있는가?
이처럼 기존의 법률 체계는 고의와 과실을 기반으로 한 인간 중심의 책임 구조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예측 불가능하고 스스로 진화하는 AI의 특성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또한, ‘소프트웨어 오류’와 ‘AI의 판단 실수’를 동일 선상에 놓고 다루는 것도 문제입니다. AI는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데이터를 기반으로 ‘결정하는 존재’처럼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 법적으로는 이러한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고 정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이로 인해 실제 피해 사례가 발생하더라도, 책임이 흐려지고 입증이 어려워지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피해자는 존재하지만, 가해자는 ‘없다’는 모순이 생겨나는 것이죠.이러한 상황은 단순한 법률 문제를 넘어서, AI 기술 전반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 요소입니다. 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AI가 관여된 시스템을 기피하거나 불신하게 될 것이며, 이는 기술 발전 자체를 저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따라서 앞으로의 법률은 단지 규제와 처벌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신뢰 가능한 기술 생태계를 위한 ‘사회적 계약’의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자, 법률가, 정책입안자, 시민이 모두 함께 논의하고 참여하는 다층적인 접근이 필수적입니다.
책임 회피의 위험 –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
AI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자동화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바로 책임 체계의 정비입니다. 기술은 인간의 판단과 행동을 대체하지만, 정작 문제가 생겼을 때는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습니다.이런 책임 회피는 단순한 기술적 부작용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의 균열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AI가 범죄 예측 시스템에서 특정 인종이나 계층을 과대표집하여 편향된 판단을 내렸다고 할 때, 시스템을 운용한 공공기관은 “우리는 데이터에 따른 결과를 따랐을 뿐”이라 말합니다. AI 개발자는 “우리는 도구를 만들었을 뿐”이라 하고, 정책 결정자는 “기술을 활용했을 뿐”이라며 책임을 미룹니다. 결국 피해자는 명백히 존재하지만,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의 연쇄 반응이 이어지는 것입니다.이는 공공 신뢰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만약 시민이 공공기관의 판단이나 기업의 서비스에 신뢰를 갖지 못한다면, 기술에 기반한 시스템은 거부당하거나 회피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특히 교육, 복지, 의료, 금융과 같이 민감한 영역에서는 AI의 오작동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뒤흔들 수 있습니다. 이럴 때조차 "AI의 잘못이므로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는 사회적 분노와 불신을 더욱 가중시킬 뿐입니다.더 큰 문제는 이런 책임 공백이 반복될 경우, 기술 자체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정교한 AI 기술이라 하더라도, 인간 사회에서 '책임'이라는 요소가 결여되면 그 기술은 결코 온전히 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 기술 발전이 도리어 사회적 퇴보로 이어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죠.결국 기술의 진보와 함께 가야 할 것은 책임을 지는 구조와 윤리적 자각입니다. AI의 도입은 혁신일 수 있지만, 그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에 대해 어떤 보호장치도 마련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혁신이 아닌 무책임한 실험을 반복하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기술이 아닌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이유
AI는 인간이 만든 도구입니다. 스스로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거나, 윤리적 판단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고도화된 인공지능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프로그래밍된 알고리즘과 데이터에 따라 작동하는 시스템일 뿐입니다. 따라서 AI가 내린 결정이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켰을 경우, 책임은 그 도구를 만든 사람, 운영한 조직, 결정을 위임한 인간 주체에게 귀속되어야 합니다.실제로 많은 경우, AI의 잘못된 판단은 데이터의 편향이나 설계 단계에서의 한계, 또는 잘못된 운용 방식에서 기인합니다. 예를 들어, AI 채용 시스템이 특정 인종이나 성별을 배제하는 판단을 내린다면, 그것은 AI가 차별적인 의도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데이터가 과거 인간 사회에서 존재해왔기 때문에 반영된 결과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그대로 사용한 사람들의 책임이라는 점입니다.또한, AI의 결정은 설명 가능성이 낮고, 추적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더욱더 개발자, 경영자, 정책 결정자 등 인간의 책임 의식이 중요합니다.
- 누가 그 AI를 만들었는가?
- 어떤 기준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되었는가?
- 그 AI의 판단을 사람들은 어떤 절차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는가?
이 모든 질문에는 결국 인간이 답해야 하며, 책임도 인간에게 돌아가야 합니다.AI는 법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독립된 책임 주체가 아닙니다. 현재로선 AI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거나, 벌금을 부과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AI 책임 회피’ 구조가 위험한 이유는, 누군가 반드시 책임져야 할 상황에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책임 구조는 오히려 더 인간 중심으로 강화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술은 어디까지나 ‘수단’이고, 그 수단을 선택하고 사용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맺음말: 책임지는 기술만이 신뢰받을 수 있다
AI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그만큼 우리가 마주해야 할 윤리적, 사회적 책임도 함께 커지고 있습니다. 기술은 스스로 방향을 정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설계하고, 어떤 맥락에서 사용하며, 그 결과를 어떻게 다룰지는 결국 사람의 선택과 책임에 달려 있습니다.만약 어떤 기술이 잘못된 결정을 내려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기술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신뢰는 단순히 기술의 정확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구도 회피하지 않는 명확한 책임 구조에서 시작됩니다.AI의 판단이 사람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지금, 우리는 더 이상 "기계가 그렇게 판단했다"는 말로 모든 것을 넘어갈 수 없습니다. 판단의 과정과 결과가 불투명한 기술은 결국 사회적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기술의 도입 자체에 대한 거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따라서 앞으로의 기술은 단순히 '똑똑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하며, 인간의 윤리 기준과 함께 작동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속 가능한 AI 기술의 조건이자, 사회로부터 신뢰받는 유일한 길입니다.기술이 사회와 더 깊이 연결될수록 우리는 그것의 결과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AI가 결정하는 시대, 우리는 ‘책임지는 기술’을 만들고 선택할 줄 아는 성숙한 사용자이자 설계자가 되어야 합니다. 진짜 신뢰는, 그런 기술에서 비롯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