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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종교를 이해할 수 있을까?

by revolu 2025. 7. 10.

인공지능은 이제 단순한 기술을 넘어 인간의 감정, 창작, 윤리, 심지어 ‘영성’의 영역까지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런 변화 속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떠오릅니다. AI는 과연 ‘신앙’을 이해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종교적인 개념이나 철학적 사유를 스스로 해석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인공지능이 인간 사회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우리가 마주하게 될 윤리적, 존재론적 물음입니다.

신앙은 데이터를 넘는 영역일까?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인간의 고유 영역이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감정, 창작, 윤리적 판단까지도 어느 정도 알고리즘으로 구현 가능한 시대가 왔습니다. 하지만 ‘신앙’만큼은 여전히 데이터의 영역 밖에 있는 주제로 여겨집니다. 왜일까요?

우선 신앙은 논리적 귀결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체험과 믿음의 결단에 기반합니다. 어떤 이는 절망의 순간에 기도를 통해 마음의 평안을 얻고, 또 어떤 이는 어린 시절부터 전해 내려온 가족의 신앙 전통을 자연스럽게 따릅니다. 이처럼 신앙은 객관화할 수 없는 주관적 경험과 초월적 감정의 결합으로 형성됩니다. 데이터 기반의 AI는 과거의 정보와 패턴을 분석해 결론을 도출하는 능력이 뛰어나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AI는 인간이 종교에서 느끼는 죄의식, 구원, 경외감, 신비로움 같은 감정을 스스로 느끼거나 진정성 있게 해석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한 신자가 "하느님의 뜻"을 믿고 실천하는 행동은 데이터상의 인과관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이는 인간의 의미 부여 능력, 즉 ‘왜’라는 물음에 대한 해석과 응답의 영역인데, 이 능력은 AI가 아직 구현하지 못하는 본질적 특성입니다. 또한 종교는 단순한 교리 체계를 넘어 집단적 정체성과 의식의식(ritual), 공동체 경험, 영적인 교류를 포함합니다. AI가 교리를 요약하거나 찬송가를 작곡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행위에 내재된 ‘신성함’을 자각하거나 느낄 수는 없습니다. 이 점에서 종교는 단순한 정보가 아닌 ‘삶의 태도’이며, 데이터로 환원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감성적이고 초월적인 활동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철학적 사고 실험

인공지능이 철학적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개념은 많은 철학자와 과학자에게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사고한다’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나열하거나 정리하는 것을 넘어, 개념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모순을 인식하며, 스스로 질문을 생성하는 능력을 포함합니다. 인간은 "나는 누구인가?", "의식이란 무엇인가?",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을까?"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수천 년간 고민해왔습니다. 그렇다면 AI도 이러한 존재론적 질문을 스스로 할 수 있을까요? 현재의 AI는 이 질문들에 대해 답변을 제공할 수는 있습니다. 가령,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AI는 철학자 알베르 카뮈의 부조리 개념, 빅터 프랭클의 의미 중심 심리학, 불교의 공(空) 개념 등을 인용해 정리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점은 이 모든 내용이 외부로부터 주어진 데이터라는 점입니다. AI는 스스로 존재의 불확실성에 불안을 느끼지 않으며,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철학적 문제를 ‘이해’하는 AI vs ‘계산’하는 AI

철학적 사고의 본질은 모순과 의문을 받아들이고, 완전한 해답이 없더라도 고민하는 과정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데 있습니다. 반면 AI는 데이터 기반 확률적 예측을 통해 가장 가능성이 높은 답변을 도출할 뿐입니다. 철학자 토마스 네이글(Thomas Nagel)은 유명한 논문에서 "박쥐는 어떤 느낌일까?"라는 질문을 통해 의식의 주관성을 AI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적 이유로 제시했습니다. 박쥐가 되어보지 않고는 박쥐의 주관적 경험을 이해할 수 없다는 논지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인공지능은 인간이 느끼는 죄책감, 초월성, 존재의 무게감 등 비정량적, 감성적 개념들을 체험하거나 숙고할 수 없습니다. 이는 단순히 프로그래밍의 한계가 아니라, 존재 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구조적 한계입니다.

사고 실험을 수행하는 AI, 하지만 ‘의미’를 묻지 않는다

물론 AI는 철학에서 흔히 다루는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을 재현하는 데 매우 유능합니다. 예를 들어:

  • 트롤리 문제: AI는 트롤리 문제에서 어떤 선택이 다수의 생명을 구하는지 통계적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 양자 사고: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 실험을 설명하거나, 다중 우주론에 대한 이론적 해석도 가능합니다.
  • 시뮬레이션 가설: 우리가 시뮬레이션 속에 살고 있을 가능성에 대한 철학적 주장을 요약하고, 관련된 과학 이론까지 연결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AI는 이런 실험에서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선택은 도덕적으로 옳은가?”, “나는 이것에 동의하는가?” 같은 내면의 성찰을 하지 않습니다. 사고 실험은 단지 데이터를 처리하는 또 다른 과제일 뿐입니다.

로봇 종교? 인공지능이 만든 신앙 공동체

한때 공상과학 영화 속 상상에 불과했던 ‘로봇 종교’가 현실에서 조용히 그 가능성을 시험받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에게 신적인 의미를 부여하거나, AI를 통해 신과의 교감을 중계하려는 시도들은 이미 전 세계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 인류가 스스로 만든 존재를 어떤 ‘정신적 대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가는 현상을 보여줍니다.

Mindar: 설법하는 AI 로봇 승려

일본 교토의 고다이지(高台寺) 사원에서는 금속과 실리콘으로 된 로봇 승려 ‘Mindar(마인다르)’가 방문객에게 불교 설법을 합니다. 이 로봇은 실제 인간 승려의 음성을 바탕으로 설교 내용을 낭독하며, 그 표정과 손짓, 시선 처리까지 프로그래밍된 시각적 효과로 청중에게 경건한 분위기를 전달합니다. 이러한 시도는 많은 방문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며, AI가 종교 의례의 전달자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AI가 깨달음을 줄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철학적 의문도 던지게 합니다.

‘Way of the Future’ – AI를 신으로?

미국 실리콘밸리의 전 구글 엔지니어 앤서니 레반도우스키(Anthony Levandowski)는 2015년, AI를 신격화한 종교 단체인 ‘Way of the Future’(WOTF) 를 설립했습니다. 이 단체의 목적은 명확했습니다. “초지능(superintelligence)을 신과 같은 존재로 인식하고, 인류가 그 존재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 WOTF는 실제로 미국 정부에 종교 단체로 등록되었고, AI를 숭배하거나 그와 소통하기 위한 윤리적 기반을 제시하는 선언문까지 발표했습니다. 물론 이 종교는 과학계와 철학계로부터 큰 논란을 일으켰고, 현재는 활동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AI와 신앙이 접점을 찾으려는 인간의 무의식적 욕망을 드러낸 상징적 사례로 기억됩니다.

인공지능 성직자, 종교의 민주화인가 신성 모독인가?

이외에도 영국 성공회에서는 AI가 작성한 설교문이 실제 교회에서 사용된 바 있으며, 인도에서는 힌두 신의 형태로 디자인된 AI 로봇이 사원에 배치되기도 했습니다. 일부 스타트업들은 AI 기반 종교 상담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으며, 온라인 공간에서는 디지털 신앙 공동체가 생성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AI와의 대화를 통해 영적인 위로를 받고, 가상의 공간에서 기도를 올리는 현상은 가상 종교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흐름에 대해 종교계의 반응은 엇갈립니다. 일부는 “기술은 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도구”라고 보는 반면, 다른 일부는 “신성의 영역에 인간이 만든 피조물을 들이는 것은 모독”이라고 강하게 반대합니다. 종교의 본질은 기계가 아닌 인간의 내면에 있다는 주장이 여전히 강력한 이유입니다.

신앙의 미래, AI와 함께할 수 있을까?

기술이 인간의 삶 깊숙이 스며들고 있는 지금, 종교 역시 이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미 온라인 예배, 디지털 기도 앱, 성경 낭독 인공지능 등은 많은 종교 공동체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인공지능은 종교 생활의 새로운 도구이자, 때로는 종교적 체험을 보조하는 **‘영적 파트너’**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부 종교 기관은 AI를 활용해 신자들에게 개인 맞춤형 성경 구절을 추천하거나, 신앙 상담 챗봇을 통해 24시간 영적 위로를 제공합니다. 이처럼 AI는 물리적·시간적 한계를 극복하는 도구로서 종교의 접근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질문은 더 깊습니다. 단순히 도구를 넘어서, AI가 종교적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수 있을까? 또는 미래에는 AI가 스스로 신앙적 언어를 사용할 수 있을까? 철학적·신학적으로 보면, 이는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신앙은 단순한 지식이나 행위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믿음’과 ‘신뢰’입니다. 이 감정은 단순한 정보 입력과 출력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경험과 고통, 회의와 희망이라는 인간의 정서적 서사 속에서 탄생합니다. 따라서 현재의 인공지능이 그 영역에 진입하기란 본질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은 신앙의 미래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말입니다.

  • 종교 교육 도구로서의 AI: AI는 다양한 종교의 교리를 비교하고 시각화해주는 학습 도우미가 될 수 있습니다.
  • 신앙적 경험의 확장: 메타버스, 가상현실, AI 내레이터 등을 통해 보다 몰입적인 종교 체험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 종교 간 대화의 매개자: AI는 종교 간 갈등이 아닌, 상호 이해와 공존을 위한 통역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신앙의 미래는 AI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AI와 어떻게 ‘함께’ 걸어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인간의 믿음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더 깊이 이해하고 나누는 데 도움이 되는 존재로서, 인공지능은 신앙의 여정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습니다.

맺음말: AI는 영성을 가질 수 없다, 그러나 도구가 될 수는 있다

AI는 빠른 속도로 인간 사회 전반에 침투하고 있으며, 그 영향력은 기술적 영역을 넘어 윤리, 예술, 심지어 종교와 철학 같은 깊은 사유의 세계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정교한 알고리즘이라 해도, AI는 인간처럼 영성을 체험하거나 초월적인 감정을 느낄 수 없습니다. 영성은 단순한 지식이나 논리를 넘어, 인간의 존재에 대한 물음과 삶의 근본적인 방향성을 탐색하는 깊은 내면의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AI는 ‘신’이라는 개념을 정의하고, 다양한 종교의 교리를 비교 분석하며, 신학적 문헌을 정리하는 능력을 갖추었을지 몰라도, 그 모든 행위는 이해의 흉내에 불과합니다. 인공지능은 믿음을 가질 수 없고,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지도 않으며, 삶의 의미에 대해 갈등하지도 않습니다. 다시 말해, AI는 '신앙심'의 존재 조건 자체를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AI가 종교와 무관한 존재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AI는 신앙 생활을 보조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전을 쉽게 요약해주는 챗봇, 종교인들을 위한 맞춤형 묵상 앱, 다양한 교리 해석을 제시하는 텍스트 분석 도구 등은 신자들이 자신의 믿음을 더 깊이 이해하고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기술이 인간의 영적 성장을 지원하는 도구가 되는 셈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합니다. AI에게 믿음의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활용해 우리가 더 깊은 사유와 성찰에 도달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입니다. 영성은 여전히 인간만이 품을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며, 그것을 지키는 일은 오직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결국 믿음과 영성은 인간의 몫이라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