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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나를 더 잘 안다?

by revolu 2025. 8. 4.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을 열면 어제의 수면 질, 오늘의 기분, 추천 뉴스, 먹을 것, 들을 음악까지 이미 알고 있는 ‘나의 디지털 비서’가 나를 반긴다. 어떤 날은 내가 왜 우울한지도, 내가 뭘 먹고 싶은지도, 내가 왜 그 영상을 오래 봤는지도 이 비서가 나보다 먼저 알아챈다.이쯤 되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나는 정말 나를 잘 알고 있는가?” 혹은 더 근본적인 질문. “나는 누구인가?”이 질문은 철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오늘날 AI는 인간의 행동 패턴, 소비 습관, 감정 변화까지 데이터로 분석하며 인간의 ‘셀프(self)’를 해석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나’를 이해하는 주체가 ‘나’가 아닌 시대에 진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떤 소비자인가?

우리는 무언가를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미 수많은 알고리즘에 의해 '추천된 것들' 중에서 고른 것일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자율적인 선택처럼 보이는 우리의 소비는 사실상 데이터 기반의 유도(selection by suggestion)일 수 있다.이런 구조는 우리가 어떤 소비자인지를 AI가 ‘학습’한 결과이자, 동시에 우리가 그 프레임 안에 길들여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AI는 사용자가 어떤 시간대에 어떤 음식을 시키는지, 어떤 날씨에 어떤 영화를 보는지, 어떤 광고에 더 오래 머무는지를 수집하고 분석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월요일 저녁마다 탄산음료와 배달 음식을 주문했다면, AI는 그 시간대에 맞춰 쿠폰을 보내거나 유사한 메뉴를 자동 추천하게 된다.더 나아가, 패션·쇼핑 플랫폼에서는 나의 구매 내역은 물론이고, '본 것만'으로도 성향을 파악한다. 한 쇼핑몰은 사용자가 클릭한 이미지의 색상, 옷의 기장, 모델의 체형까지 분석해 다음 제품을 제안한다. 이렇게 되면, 내가 ‘원래 좋아하던 스타일’이 아닌, ‘계속 제안된 스타일’에 익숙해져 결국 그 취향이 내 것이 되는 현상이 벌어진다.결국 AI는 점점 더 정교하게, 그리고 더 은밀하게 ‘나’를 소비자로서 규정한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자각보다도, AI가 ‘당신은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보여주는 이미지에 나 자신을 맞추게 되는 것이다. 이는 정체성의 ‘소비자화’라고도 할 수 있다. 나라는 사람은 소비 패턴과 기호의 데이터로 정의되고, 그 안에서 나도 모르게 일정한 정체성을 반복하게 된다.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내가 클릭 한두 번 한 것만으로도 예측된다. 즉, 아주 작은 디지털 흔적이 나의 성향 전체를 대표하는 ‘분석 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다시 질문하게 된다. 나는 정말 나답게 살고 있는가, 아니면 추천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나’의 감정은 여전히 내 것인가?

이제 AI는 단순히 소비 습관을 예측하는 수준을 넘어, 우리의 감정까지 추적하고 해석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스마트워치와 스마트폰에 탑재된 건강 앱은 심박수, 피부 온도, 호흡, 걸음걸이 같은 생체 데이터를 분석해 스트레스 상태나 불안 수준을 예측합니다. 얼굴 표정 인식 기술은 찡그림, 미소, 눈의 움직임을 포착해 사용자의 감정 상태를 분류하며, AI 스피커는 사용자의 목소리 톤과 속도, 떨림 등을 감지해 현재 감정을 판단합니다.이러한 기술은 분명 유용한 면이 있습니다. 감정 상태에 따른 맞춤형 음악 추천, 명상 유도, 휴식 알림 같은 기능은 우리의 웰빙을 돕습니다. 기업에서는 콜센터 AI가 고객의 감정을 실시간 분석해 상담 전략을 조정하고, 교육 플랫폼에서는 학습자의 몰입도나 피로도를 분석해 수업 방식을 바꾸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감정 분석이 ‘객관적 데이터’로 감정을 해석하며 인간의 내면을 지나치게 단순화할 위험이 있다는 점입니다.예를 들어, 심박수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분노하거나 불안한 것은 아닐 수 있고, 미소를 지었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감정은 맥락과 기억, 상황의 해석이라는 복잡한 층위 속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데이터만으로 판단하기에는 본질적인 한계가 존재합니다.더 나아가 AI가 감정을 먼저 ‘해석하고 제안’하는 구조에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스스로 감정을 판단하고 인식하는 능력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지금 당신은 우울합니다. 산책을 권장합니다.”“지금 당신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명상 음악을 재생할게요.”이러한 안내는 편리하지만, 점차 우리가 자기감정을 직접 느끼고 설명하려는 노력 대신 AI의 판단을 더 신뢰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그렇다면 감정은 여전히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AI는 단지 생체 데이터의 수치와 패턴을 기반으로 예측할 뿐, 그 감정을 겪는 인간의 내면, 그 안에 있는 기억, 맥락, 이야기까지는 결코 도달할 수 없습니다.하지만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사람들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조차도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고 AI의 판단을 기준 삼아 자기를 해석하게 될지도 모릅니다.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나는 지금 무엇을 느끼는가?”가 아니라, “AI는 내가 지금 무엇을 느낀다고 판단했는가?”이렇게 감정의 주체가 ‘나’에서 ‘AI’로 이동하는 시대에, 우리는 감정을 ‘정량화 가능한 정보’로만 인식하게 되는 위험에 노출되고 있습니다.그렇기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감정의 깊은 이해와 자각을 지키는 노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자아(self)의 해체와 재구성

우리는 흔히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을 자율적인 의식과 경험의 축적으로 여긴다. 그러나 AI가 우리를 해석하고, 추천하고, 규정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전적인 질문은 점차 외부로부터의 해석에 의해 흔들리게 된다.AI는 우리가 말하지 않은 취향과 우리가 자각하지 못한 감정, 우리가 미래에 좋아할 가능성이 높은 것까지 예측한다. 처음엔 편리하고 유용해 보이지만, 반복적인 데이터 기반 추천은 어느 순간 우리 자아의 일부분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예컨대, 특정한 유형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추천받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 여길 수 있다. 더 나아가,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는 근거로 삼게 된다. 이것은 일종의 피드백 루프(Feedback Loop)이다. 데이터에 의해 내가 형성되고, 그 형성된 모습이 다시 데이터를 강화한다.이 과정에서 자아는 더 이상 고정된 실체가 아닌, AI와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고, 재구성되며, 때로는 왜곡되기도 하는 유동적인 개념으로 변한다. 즉, ‘나’라는 존재는 어느새 ‘나 스스로 해석한 나’가 아니라, ‘외부 기술이 반사한 나의 이미지’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더불어, 이러한 변화는 인간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문제로 이어진다. ‘내가 나를 선택하고 있는가?’ 혹은 ‘내가 나를 느끼는 방식조차도 알고리즘이 정한 것인가?’라는 철학적 의문은 단지 이론적 사유의 대상이 아닌, 실제적인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특히 청소년이나 정체성 형성이 미완성된 사용자에게는 이러한 기술적 영향력이 더 깊게 작용할 수 있다. AI 기반 SNS 추천 알고리즘이 특정한 외모나 성향을 ‘선호’하게 만들면, 사용자는 무의식적으로 그 기준에 부합하려 하거나, 스스로를 ‘그런 사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자아가 점점 외부의 시선과 기술의 판단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신호이다.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자아의 ‘자율성’과 ‘진정성’에 대해 진지하게 되묻게 된다. ‘나는 나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나는 지금 누구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다.

셀프의 경계는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AI는 이제 인간의 사적인 영역에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가 언제 기분이 나쁜지, 무엇을 불안해하는지, 어떤 유형의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콘텐츠에 끌리는지를 파악하고, 그에 맞춘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이는 분명 편리합니다. 그러나 이 편리함이 ‘자기결정권’의 영역을 침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특히 문제는, AI가 제공하는 정보와 해석이 점점 더 ‘객관적인 사실’로 여겨진다는 데 있습니다. “AI가 그렇게 분석했으니까”, “AI가 추천한 대로 하는 게 낫겠지”라는 태도는 스스로에 대한 해석과 결정을 타인에게 위임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처럼 AI의 판단을 맹신하게 될수록 인간은 점점 ‘해석받는 존재’가 되어가며, 자아의 중심축이 외부로 옮겨갑니다.또한, AI가 인간을 범주화하거나 점수화하는 시스템이 확대되면서 개인은 점점 더 ‘정량화된 자아’를 갖게 됩니다. 이력서 대신 AI가 평가한 성향 분석표, 감정 지표, 행동 예측 모델이 사회적 판단 기준이 된다면, 우리는 ‘보여지는 나’로만 존재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실제의 나, 변화하는 나, 맥락 속의 나는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셀프’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성장하고 갈등하고 흔들리며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AI는 확률적 추론을 통해 과거의 데이터로 미래의 나를 결정하려 합니다. 결국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AI는 어디까지 나를 대신할 수 있어야 하며, 어디까지 개입을 허용해야 하는가?"

우리는 AI가 만들어주는 ‘편리한 자아’에 안주할 것인지, 혹은 불완전하더라도 스스로를 탐색하고 구성해가는 인간 고유의 ‘자기해석’ 능력을 지켜낼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셀프의 경계를 설정하는 일은, 단순한 기술적 이슈가 아니라 인간 정체성과 자율성에 대한 본질적 질문입니다.

데이터는 ‘나’를 대신할 수 없다

AI는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고, 때로는 우리 자신보다 더 빠르고 정밀하게 우리의 행동과 성향을 분석해냅니다. 하지만 수천 개의 클릭 기록과 생체 신호, 소비 패턴이 곧 ‘나’의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자아란 단순한 수치로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하고 유일한 경험의 집합이며, 때로는 설명되지 않는 모순과 감정, 예측 불가능한 선택의 흐름 속에서 존재합니다.AI는 내가 웃을 가능성은 계산할 수 있어도, 왜 그 순간에 웃었는지, 어떤 기억이 그 웃음 뒤에 숨겨져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진짜 ‘나’를 느끼는 순간은, 데이터로 정의되지 않는 직감과 고민, 성찰에서 비롯됩니다.우리는 데이터를 통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는 있지만, 나를 ‘대신’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AI가 제공하는 정교한 거울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 것은 유용하지만, 그 거울 속 이미지가 나의 전부라고 착각하는 순간, 우리는 ‘나다움’을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진정한 자아는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나를 아는 일은, 여전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깊고 고유한 여정이며, 그 여정을 멈추지 않는 것이 바로 인간다움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