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아니 어쩌면 수백 번 이상 알고리즘의 ‘추천’을 따릅니다. 유튜브에서 다음 영상을 선택하고,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고르며,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길로 무의식적으로 운전하고, 온라인 쇼핑몰에서 추천 상품을 따라 구매 결정을 내립니다. 눈에 띄지 않게 삶에 스며든 이 결정의 순간들 뒤에는 모두 알고리즘의 선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이 알고리즘을 인간보다 더 신뢰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알고리즘은 ‘객관적’이라는 착각
사람들은 종종 알고리즘이 인간보다 더 객관적이라고 믿습니다. 인간은 감정, 편견, 기억의 오류에 영향을 받지만, 알고리즘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감정 없이’ 계산하기 때문에 더 공정하고 중립적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숫자와 통계로 설명되는 알고리즘의 결과물은, 그 자체로 마치 과학적이고 정확한 진실처럼 여겨지곤 합니다.하지만 이는 위험한 착각입니다. 알고리즘이 객관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 작동 방식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알고리즘이 어떤 데이터를 학습했고,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며, 누가 그 규칙을 만들었는지를 알지 못한 채 결과만 받아들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데이터 기반의 ‘논리적 판단’ 같지만, 그 안에는 디자이너의 가치 판단, 데이터 수집자의 편향, 구조화 과정의 선택 등이 숨어 있습니다.예를 들어, 한 채용 알고리즘이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성공한 직원의 특성’을 분석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 성공한 직원들이 대부분 남성이고 특정 대학 출신이라면, 이 알고리즘은 의도치 않게 여성이나 다른 배경을 가진 지원자를 불이익 주는 방식으로 학습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런 차별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편향된 데이터를 학습한 알고리즘은 기존의 불평등을 더 정교하게 복제하는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또한, 알고리즘은 수많은 변수 중 어떤 것을 중요하게 볼지를 프로그래머가 사전에 설정합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요인을 ‘무시’하거나 ‘강조’하는지도 인간의 결정에 따라 달라집니다. 즉, 알고리즘은 인간의 ‘의도’를 기술이라는 옷으로 포장해 보여줄 뿐이며, 완전히 중립적일 수 없습니다.따라서 알고리즘은 ‘객관적이다’라는 믿음은 기술에 대한 과도한 이상화이며, 우리가 꼭 경계해야 할 기계 중립성의 환상입니다. 진정한 객관성은 알고리즘의 결과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동 원리와 한계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검증하는 태도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신뢰의 기준이 사람에서 기계로 이동하고 있다
과거에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사람’을 믿는 것이 기본이었습니다. 의사의 진단, 선생님의 평가, 상사의 판단은 인간 경험과 직관을 바탕으로 이뤄졌고, 우리는 그 사람의 전문성, 성품, 평판 등을 고려해 신뢰를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점점 더 기계가 내리는 판단을 더 신뢰하게 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의 진보를 넘어서, ‘신뢰의 주체’가 전환되고 있다는 사회적 징후입니다.특히 복잡하고 방대한 데이터를 다뤄야 하는 상황에서는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분석 결과나 예측치가 인간보다 더 ‘정확할 것’이라는 기대가 지배적입니다. “기계는 감정이 없으니까 더 공정할 것이다”, “AI는 수많은 사례를 학습했으니까 오류가 적을 것이다”라는 인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점차 판단의 책임을 기계에게 넘기게 만들고 있습니다.예를 들어, 채용 과정에서 AI가 지원자의 이력서를 평가하면 인사 담당자는 ‘객관적 필터링’이라며 이를 신뢰합니다. 병원에서는 AI가 분석한 의료 영상에 의존하는 사례가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심지어 법정에서도 AI 분석 시스템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존재합니다.이처럼 신뢰의 무게중심이 사람에서 기계로 옮겨가는 현상은 다양한 영역에서 이미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기계가 오류를 범했을 때, 그 책임의 주체가 불분명해진다는 점입니다. 알고리즘의 판단을 신뢰한 사람이지만, 판단의 ‘근거’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비판과 검토가 어려워지고, 결과적으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판단’이 우리 사회에 늘어날 위험이 존재합니다.또한, 반복적으로 알고리즘에 의존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력과 직관에 대한 신뢰를 점점 상실하게 됩니다. 이는 기술 발전의 편리함 이면에 존재하는 ‘인지적 위축’이며, 장기적으로는 인간의 사고 능력과 자율성까지 위협할 수 있습니다.결국, 우리는 단지 AI의 정확도만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사회의 신뢰 구조가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지를 직시해야 합니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며, 판단의 책임과 주체성은 여전히 인간에게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흔들려선 안 됩니다.
알고리즘을 신뢰한다는 건, 그 설계자를 신뢰하는 것
우리는 종종 알고리즘을 마치 중립적인 기계처럼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알고리즘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설계한 일련의 규칙과 판단 기준의 집합일 뿐이며, 그 알고리즘의 구조와 결과는 설계자의 가치관, 의도, 그리고 무의식적 편향까지 모두 반영되어 있습니다.예를 들어, 뉴스 추천 알고리즘은 어떤 기사를 먼저 보여줄지 결정합니다. 이 결정에는 무엇을 ‘중요’하게 판단하는지, 어떤 클릭률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지, 혹은 특정 정치적 성향의 뉴스를 어느 정도로 노출할지를 선택한 프로그래머나 기업의 철학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습니다. 즉, 우리가 알고리즘의 판단을 따르는 순간, 우리는 그 판단을 만든 사람의 사고방식을 간접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더구나 많은 경우, 이 알고리즘은 '블랙박스'처럼 작동합니다. 일반 사용자 입장에서는 왜 그 결과가 나왔는지, 어떤 데이터를 기반으로 판단한 것인지, 어떤 기준을 적용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설명 가능성이 부족한 AI 시스템일수록 우리는 더 깊은 불신이나 맹신에 빠지게 됩니다. 이 두 가지 모두 위험합니다.따라서 우리가 알고리즘을 신뢰한다는 말은 곧,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판단 기준을 신뢰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문제는, 이 기준이 항상 공정하거나 윤리적일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특정 기업의 이익, 정치적 목적, 사회적 편견이 반영된 알고리즘일 경우, 우리는 그 영향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채 살아가게 되는 셈입니다.그렇기에 알고리즘을 신뢰할 때는, 그 설계자의 정체성과 의도를 따져보는 비판적 시각이 반드시 필요합니다.기술은 사람이 만든 것이며,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 만든 알고리즘 역시 오류와 편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인간의 판단이 여전히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 맹점을 감지하고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만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할 기술
AI의 발전은 막을 수 없는 시대적 흐름입니다. 우리는 이미 많은 영역에서 AI의 도움을 받고 있고, 앞으로는 그 활용 범위가 훨씬 더 넓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서 그 기술이 반드시 옳은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닙니다. AI가 내리는 판단은 ‘정답’이 아니라, ‘가능성 높은 추정치’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그 결과에 대한 해석과 책임은 여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학습된 정보가 불완전하거나 편향되어 있다면 그 결과 역시 왜곡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범죄 예측 알고리즘이 과거의 체포 기록에 기반한다면 특정 인종이나 계층을 과도하게 표적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AI가 만든 결과는 사회 구조적인 편견을 무비판적으로 재생산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그렇기에 우리는 AI의 판단을 맹신하거나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기보다, '해석 가능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 능력을 함께 길러야 합니다. AI가 제안한 정보를 받아들이기 전에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가?’, ‘이 판단의 기준은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점검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기술은 빠르지만, 빠르다고 해서 정확하거나 윤리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궁극적으로 AI는 인간의 결정을 보완하는 도구이어야 합니다. 결정을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결정을 돕는 조력자로서 기능해야 합니다. 의료, 교육, 법률, 금융, 언론 등 인간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분야일수록 기술의 통제권은 더욱 철저히 인간에게 있어야 하며, AI는 절대적인 권위가 아니라 ‘조언자’로서의 역할을 벗어나지 말아야 합니다.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오히려 우리는 기술에 대한 경계심과 통제력을 더 강화해야 합니다. AI가 인간을 도울 수는 있지만, 인간을 대신해서는 안 됩니다. 통제받지 않는 기술은 공정성을 해치고, 인간성을 훼손하며, 사회 전체의 신뢰 구조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AI가 사회를 재구성하는 이 중요한 전환점에서 기술을 통제할 책임과 권한을 스스로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맺음말: 신뢰는 인간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결정을 알고리즘에 맡기고 있습니다. 길 찾기부터 금융 추천, 채용, 의료 진단까지 — AI는 ‘신뢰할 수 있는 조언자’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최종 판단의 책임은 인간에게 있습니다. 신뢰는 단순히 정확도나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와 책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예측하고 판단하지만, 그 데이터는 과거의 인간 행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AI는 인간 사회의 복사본에 불과합니다. 그렇기에 완벽하게 공정하거나 객관적일 수 없습니다. 이런 한계 속에서도 기술을 사용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작동하는가’뿐 아니라 ‘왜 신뢰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 점검할 수 있어야 합니다.기계는 도구일 뿐이며, 사람의 삶을 보조하는 존재입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신뢰는 궁극적으로 사람에게서 출발해 사람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결정의 순간마다, 감정과 맥락, 윤리를 고려할 수 있는 존재는 여전히 인간뿐입니다. 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우리가 그것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을 통제하고 해석할 수 있는 인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의 시대는 기술의 진보만으로 평가되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기술을 신뢰하고, 또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가가 진짜 과제가 될 것입니다. AI 시대의 신뢰는 인간의 손에 달려 있으며, 그 신뢰의 중심에는 항상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