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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정말 존재하는가?

by revolu 2025. 9. 12.

우리는 하루 24시간을 살아갑니다. 시계를 보며 약속을 잡고, 과거를 회상하며, 미래를 계획합니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것이 과연 실재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단지 인간이 만든 편리한 개념일 뿐일까요? 시간의 본질은 고대 철학자부터 현대 물리학자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탐구되어온 주제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물리학과 철학의 시각을 넘나들며 시간의 실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고대 철학에서의 시간

시간에 대한 질문은 고대 철학자들에게도 커다란 화두였습니다. 그들은 ‘시간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단지 인간이 느끼는 환상일 뿐인가’라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플라톤은 『티마이오스』에서 시간을 “영원의 움직이는 그림자”라고 정의했습니다. 여기서 ‘영원’이란 완전하고 변하지 않는 이데아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반대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는 끊임없이 변하며, 시간은 그 변화 속에서 드러나는 불완전한 모사라는 것이지요. 플라톤에게 시간은 절대적 실체라기보다는 이데아의 질서를 반영하는 일종의 파생물에 불과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는 다르게 보다 현실적인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시간을 “변화의 수(數)”라고 정의하면서, 시간은 변화와 운동이 있기 때문에 세어지고 측정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변화가 없는 세계에서는 시간 또한 성립하지 않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시간은 독립적인 실체가 아니라, 변화가 있기에 파악할 수 있는 관계적 성질이었습니다.동양 사상에서도 시간에 대한 깊은 사유가 이어졌습니다. 불교에서는 시간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발전시켰습니다. 과거는 이미 사라져버렸고, 미래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으며, 지금 이 순간만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집착하는 ‘과거’와 ‘미래’는 마음속에서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며, 시간은 실체가 아니라 의식이 만들어내는 관념이라는 설명입니다. 이처럼 고대 철학에서의 시간 개념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하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시간을 ‘변화와 질서를 설명하기 위한 실제적 개념’으로 보는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불교와 같은 사상에서처럼 ‘인간의 착각이 빚어낸 허상’으로 보는 시각입니다. 이 대립은 이후 중세 신학자들, 근대 철학자들, 나아가 현대 과학자들에게까지 이어지며 시간의 본질을 둘러싼 긴 대화를 만들어왔습니다.

물리학에서 본 시간의 혁명

뉴턴에게 시간은 우주의 모든 사건을 담아내는 절대적인 무대였습니다. 그는 『프린키피아』에서 시간을 공간과 분리된 독립적 실체로 보았으며, 누구에게나 똑같이 흘러가는 공통의 기준이라 주장했습니다. 예를 들어, 지구에서 떨어지는 사과의 운동이나 달이 공전하는 주기 모두 동일한 ‘절대 시간’ 위에서 설명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뉴턴의 절대 시간 개념은 이후 수백 년 동안 과학의 기초가 되었고, 인류가 자연 법칙을 이해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이 견고한 관념은 아인슈타인에 의해 뒤집히게 됩니다. 아인슈타인은 1905년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하면서 “시간은 절대적이지 않다”라는 혁명적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빛의 속도가 우주에서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기준이라면, 오히려 시간이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빠르게 움직이는 관찰자는 느리게 시간이 흐르는 ‘시간 지연 현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실제로 우주 비행사의 시계는 지상에 있는 사람의 시계보다 아주 미세하게 더 느리게 작동한다는 실험적 증거도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중력이 강한 곳에서는 시간이 더 느리게 흐른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블랙홀 주변에서 시간이 거의 정지하듯 흐르는 현상으로 설명됩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흘러가는 시간’은 사실 존재하지 않으며, 시간은 관측자의 위치와 속도, 그리고 중력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죠. 이처럼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시간 개념은 정반대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뉴턴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고 변하지 않는 ‘절대적 흐름’이었지만, 아인슈타인의 시간은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관계적 흐름’입니다. 이 전환은 물리학뿐만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 놓았습니다.

양자역학과 시간

양자역학은 미시 세계를 설명하는 물리학의 이론으로, 전자나 광자 같은 입자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상호작용하는지를 다룹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이론 안에서 ‘시간’이 기존의 고전 물리학처럼 절대적 배경으로 취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고전 물리학에서 시간은 마치 무대와 같아서, 사건들이 그 위에서 차례대로 전개됩니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시간은 하나의 독립적인 실체라기보다, 단지 방정식 속 변수 중 하나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슈뢰딩거 방정식은 입자의 상태 변화를 설명하는 기본 공식인데, 여기서 시간은 단지 ‘상태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표시하는 지표로 사용됩니다. 즉, 시간 자체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입자의 파동함수가 변화하는 과정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시간은 정말 우주가 가진 본질적인 속성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수학적으로 만든 편리한 도구에 불과할까요? 현대 물리학의 더 근본적인 도전 과제 중 하나인 양자중력 이론은 이 문제를 더욱 심화시킵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우주가 시공간이라는 연속체 위에서 움직인다고 설명하는 반면, 양자역학은 입자의 불확정성과 확률적 성질을 강조합니다. 이 두 이론을 통합하려는 시도에서 어떤 학자들은 시간 자체가 ‘근본적인 존재’가 아닐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흐르는 시간’은 사실상 더 깊은 차원에서 나타나는 부산물, 즉 ‘출현적 현상(emergent phenomenon)’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온도라는 개념은 개별 분자에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분자가 모여 운동할 때, 우리는 그 평균적인 움직임을 ‘온도’라고 부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주의 더 근본적인 층위에서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으며, 우리가 관찰하는 물리적 세계에서만 ‘시간의 흐름’이 드러난다는 것이지요. 또한 일부 물리학자들은 양자 얽힘과 정보 이론을 통해 시간의 기원을 탐구하기도 합니다. 두 입자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상태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는 양자 얽힘 현상은, 우리가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시간과 인과 관계의 개념을 흔들어 놓습니다. 만약 인과성이 우리가 아는 방식과 다르게 작동한다면, 우리가 ‘앞뒤로 흐른다’고 느끼는 시간 역시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가설이 제기됩니다.결국 양자역학이 보여주는 것은, 시간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단순하거나 확실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시간은 우주의 본질적인 성질이 아닐 수도 있으며, 오히려 복잡한 물리적 과정과 상호작용 속에서 파생되는 개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질문은 단순히 물리학적인 문제를 넘어,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과 철학적 사유의 근본까지 뒤흔듭니다.

인간 경험 속의 시간

시간은 물리학적으로는 상대적이고, 철학적으로는 실재 여부가 논쟁이 되지만,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차원에서 시간은 ‘경험’으로 다가옵니다. 우리는 시계를 보지 않아도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체감합니다. 그런데 이 체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신경과학자들은 인간의 뇌가 시간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시간 감각은 시각, 청각, 감각 운동 등 여러 뇌 영역이 협력하여 만들어낸 결과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뇌는 기억을 축적하고, 사건을 순서대로 배열하며, 주어진 자극의 길이를 계산하는 과정을 통해 ‘흐름’을 구성합니다. 다시 말해, 시간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뇌의 활동 속에서 구성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즐거운 파티에 참석하거나 흥미로운 영화를 볼 때, 우리는 몇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처럼 느낍니다. 반대로 병원 대기실에서 10분을 기다리는 일은 한 시간이 넘게 흐른 듯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이처럼 동일한 물리적 시간이더라도 우리의 의식과 주의 집중, 감정 상태에 따라 시간은 전혀 다르게 체험됩니다. 또한 심리학 연구에서는 고통과 공포 상황에서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 보고합니다. 위협적인 사건에 직면하면 뇌는 순간적으로 정보를 세밀하게 처리하고, 기억을 더 치밀하게 저장합니다. 이런 과정이 우리의 의식 속에서는 ‘시간이 늘어난’ 듯한 경험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반대로 몰입(flow) 상태에서는 뇌가 특정 활동에 집중하여 다른 자극을 무시하게 되고, 그 결과 우리는 시간의 존재를 거의 잊어버리게 됩니다. 흥미롭게도 뇌과학자들은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설명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새로운 경험이 많아 하루하루가 길고 풍성하게 느껴지지만, 성인이 되어 익숙한 일상 속에 살다 보면 뇌가 새로운 정보를 덜 저장하게 됩니다. 그 결과 같은 시간이라도 훨씬 짧게 인식하게 되는 것이지요. 결국 시간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물리적 시계가 아니라, 뇌와 의식이 만들어내는 주관적 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시간이 흐른다’는 감각은 실제 외부 세계의 속성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작동 방식에서 비롯된 하나의 환상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시간은 물리학적 개념일 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와 의식을 설명하는 중요한 열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