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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보다 AI를 더 믿는 세상

by revolu 2025. 7. 31.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결정을 AI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오늘 입을 옷을 추천받고, 먹을 음식을 정하며, 가야 할 길도 내비게이션이 제안해주는 대로 따릅니다. 심지어 이제는 연애 상대, 투자처, 직장 지원 여부까지도 인공지능의 조언에 의존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습니다.이처럼 사람보다 알고리즘을 더 신뢰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요?

 

알고리즘은 ‘객관적’이라는 환상

사람들은 종종 알고리즘이 인간보다 더 ‘공정하고 객관적’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감정이나 편견이 개입되지 않고, 데이터를 기반으로만 판단한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실제로 “기계가 결정했다면 믿을 수 있겠지”라는 심리가 자리 잡고 있으며, 이는 채용, 판결, 추천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의 결정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듭니다.그러나 알고리즘이 사용하는 데이터 자체가 편향되어 있다면, 알고리즘도 똑같이 편향된 결과를 낼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의 채용 기록을 학습한 AI가 특정 학교, 성별, 인종에 대한 차별적 기준을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가 이미 여러 차례 보고되었습니다. 알고리즘은 수학적으로 작동할지언정, 그 기반이 되는 데이터는 철저히 ‘인간 사회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또한 알고리즘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해 설명할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른바 ‘블랙박스 AI’ 문제입니다. 결과만 제시되고, 그 과정이 불투명하다면, 그것은 ‘객관성’이 아니라 오히려 ‘불확실성’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그럼에도 사람들은 알고리즘의 판단을 “인간보다 낫다”고 여기고, 그 판단을 신뢰합니다. 이 신뢰는 실제 성능보다 이미지에 근거한 경우가 많습니다. 즉, ‘기계는 논리적일 것이다’라는 인식이 알고리즘에 대한 과잉 신뢰를 낳는 것이죠.결국 알고리즘의 객관성은 우리가 만든 편향된 데이터, 불완전한 설계, 맹목적인 믿음이 결합된 신화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알고리즘이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보이도록 설계된 것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보다 나은 조언자?

많은 사람들은 AI가 인간보다 더 ‘합리적인 판단’을 해준다고 믿습니다. 실수하지 않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며,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결론을 내리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인간은 종종 AI를 단순한 보조자나 도구가 아니라, 현명한 조언자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실제로 다양한 분야에서 이러한 인식이 실험적으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한 연구에서는 동일한 문제에 대해 인간 전문가와 AI가 각각 조언을 제공했을 때, 참가자들은 AI가 제시한 조언에 더 많이 동의하고 그것을 따르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AI가 제시하는 정보가 설득력 있게 보였기 때문이 아니라, “기계니까 더 정확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신뢰를 강화시킨 것입니다.또한 AI는 사후 책임 회피의 심리적 장치로도 작용합니다.예를 들어, 투자 결정을 할 때 인간 상담사의 조언을 따랐다가 손해를 보면 “왜 그 사람 말을 들었을까”라는 후회가 들지만, AI를 따른 경우에는 책임의 무게가 훨씬 덜 느껴진다는 점도 신뢰로 이어집니다. 즉, AI는 ‘비난받지 않는 조언자’로서의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이런 흐름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결정권을 AI에게 위임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판단 근육’은 점점 약해지고, 알고리즘에 대한 수동적 수용이 일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과연 이 상태가 우리가 원하는 '기술 활용의 미래'인지에 대한 질문은, 이제 우리 각자가 던져야 할 숙제가 되었습니다.

알고리즘 신뢰의 심리 구조

인간은 원래부터 ‘효율’을 중시하는 존재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수많은 결정을 내려야 하고, 그 모든 결정에 에너지를 쏟을 수는 없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스스로의 판단을 줄이고, 신뢰할 만한 외부 시스템이나 조언자에게 판단을 위임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 심리적 작동 원리를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 이론이라고 합니다.알고리즘은 이 역할을 매우 매력적으로 수행합니다. 복잡한 정보 분석, 빠른 의사결정, 객관적인 처리를 제공한다는 이미지 덕분에 사람들은 AI의 조언을 마치 ‘정답’처럼 받아들입니다.
특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상황일수록, 예컨대 시험을 준비하거나 직업을 선택할 때, 인간은 불확실성을 견디기보다는 ‘정답처럼 보이는’ 알고리즘을 의존하게 됩니다. 이것은 인간의 불안 심리와도 연결됩니다.또한 알고리즘은 '비인격적 존재’이기 때문에 감정적인 실망이나 배신감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사람의 조언은 감정과 얽히기 때문에 갈등을 낳기도 하지만, AI는 그런 갈등 없이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더 ‘안전한’ 선택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더 나아가, 인간은 ‘책임 회피’의 심리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결정이 실패했을 때, “내가 판단한 게 아니라 AI가 추천한 것”이라는 식으로 책임을 외부화할 수 있다는 점은 심리적으로 매우 유리한 구조를 제공합니다. 이는 무의식적으로 AI에 대한 신뢰를 더욱 강화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합니다.요약하자면, 알고리즘에 대한 신뢰는 단순히 기술이 좋아서 생긴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적 기전—불안 회피, 인지 절약, 책임 회피, 갈등 회피—등과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결과입니다. 이러한 심리 구조를 이해해야만, 우리가 왜 AI의 판단에 쉽게 기대고, 때로는 맹목적으로 따르게 되는지를 더 정확히 분석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맹신’입니다

AI의 조언이 유용하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유용성이 ‘무조건적인 신뢰’로 바뀌는 순간, 오히려 인간에게 해가 되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판단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마비시키고 있다면 그것은 진보가 아니라 퇴보일지도 모릅니다.실제로 자율주행차 사고 사례나, 의료 AI의 잘못된 진단 사례처럼, 사람들은 “기계니까 틀릴 리 없다”는 전제 아래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른바 기술 신뢰 오류(automation bias) 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인간이 시스템의 판단을 지나치게 신뢰하고, 그것이 명백히 잘못되었더라도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심리적 오류입니다.특히 문제는 이 맹신이 ‘책임의 회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AI의 결정으로 인해 잘못된 결과가 발생했을 때, 그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가에 대한 윤리적·법적 공백이 아직 충분히 정리되어 있지 않습니다.사용자는 “AI가 그랬으니 나는 따랐을 뿐”이라 하고, 개발자는 “우리는 도구만 만들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피해는 책임이 분산된 채 회색지대에 머무르게 되는 것입니다.따라서 우리는 AI를 믿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거리에서 의심하고 점검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AI는 보조자이지 판단의 주체가 아닙니다. 맹신은 기술을 제대로 활용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며, 인간 스스로 사고하고 결정할 수 있는 주체로 남기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심리적 함정입니다.

맺음말: 신뢰는 선택이지 복종이 아닙니다

AI를 신뢰하는 일은 더 이상 특별한 행동이 아닙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경로로 이동하고, AI가 큐레이션한 콘텐츠를 시청하며, 기계가 제시한 숫자를 바탕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립니다. 이처럼 기술은 우리의 선택을 보조하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정답을 제시하는 존재’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하지만 이 지점에서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 AI를 신뢰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복종하고 있는가?”신뢰란 인간의 고유한 사고능력과 판단력을 바탕으로 한 의식적 선택입니다. 반면 복종은 생각을 멈추고 누군가의 판단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행위입니다.만약 우리가 AI가 제시하는 모든 결정을 당연시하고, 그것을 검토하거나 의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뢰’가 아니라 ‘복종’에 더 가깝습니다.기술은 완벽하지 않으며, 언제든 오류를 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신뢰는 기술의 한계를 이해하고, 그것을 감시하며, 필요할 땐 반박할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됩니다.AI와의 건강한 공존은, 맹신이 아니라 비판적 수용에서 시작됩니다.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AI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자세가 아니라, AI를 도구로 활용할 줄 아는 주체적인 사고방식입니다.기계가 아닌 인간이 여전히 중심에 있어야 하며, 그 중심을 지키는 힘은 '생각하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판단의 힘과 윤리적 민감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