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그림, 한 편의 시, 혹은 멜로디가 더 이상 인간의 손에서만 태어나는 시대는 지났다.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은 이제 단 몇 초 만에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만들고, 시나리오를 완성한다. 이 눈부신 창조성은 놀랍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의 질문을 제기한다. 이 작품의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기술은 급속히 진화하고 있지만, 우리의 법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생성 AI가 만들어낸 결과물들은 기존 지식재산권 체계 안에서 여전히 ‘회색지대’에 놓여 있다. 창작의 정의와 권리의 귀속은 여전히 명확히 정리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수많은 논란과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인간의 창작인가, 알고리즘의 출력인가
창작이라는 행위는 전통적으로 인간의 고유한 능력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감정, 경험, 문화적 맥락을 바탕으로 개인이 만들어내는 고유한 결과물이 창작이었습니다. 그러나 생성형 AI는 이 고정관념을 근본부터 흔들고 있습니다. 이제는 인간의 손이 닿지 않아도 ‘새로운 것처럼 보이는’ 음악, 그림, 시, 심지어 영화 대본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질문이 여기서 생깁니다. 이것은 과연 창작인가, 아니면 데이터에 기반한 ‘재조합’일 뿐인가? AI는 수많은 기존 데이터를 학습하여 특정 패턴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냅니다. 예를 들어 AI 작곡 도구는 수백만 곡의 음악을 분석해 리듬, 화성, 멜로디 구조 등을 학습한 뒤, 새로운 곡처럼 보이는 결과를 생성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실제 인간 작곡가들의 스타일, 멜로디 조각, 전개 방식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습니다. 이러한 생성물이 창의적인가에 대한 평가는 아직 분분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를 ‘새로운 형태의 창조’로 보며, 인간과 협업하는 새로운 창작 방식이라고 해석합니다. 반면 또 다른 사람은 이것이 단순한 알고리즘적 산출물일 뿐, 창작의 본질을 담고 있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더욱 복잡한 문제는 AI가 만든 결과물에 인간의 기여가 어느 정도로 개입되었는가에 따라, 법적 판단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AI에게 “로맨틱한 피아노 연주곡을 만들어줘”라고 단순 지시만 했을 때와, 직접 코드와 구성, 감정 요소를 조정하며 AI를 활용했을 때는 분명히 창작의 정도가 다릅니다. 이처럼 생성형 AI의 창작물은 전통적 창작 개념과 새로운 기술적 가능성 사이에 놓인 ‘회색지대’입니다. 우리가 이 경계를 명확히 하지 못하는 한, 창작물에 대한 권리 귀속은 물론이고, 책임의 주체 또한 모호한 채 남게 됩니다.
현재 법의 입장: 권리 없는 창작물?
지금까지의 법 체계는 ‘창작자 = 인간’이라는 전제를 기반으로 구축되어 왔습니다. 즉, 저작권은 인간의 창의성과 노동의 결실에 부여되는 권리입니다. 그러나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이 전제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AI가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상황에서, 그 결과물은 법적으로 누구의 소유로 봐야 할까요? 현재까지 많은 국가에서는 AI가 만든 창작물에 대해 명확한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 저작권청(US Copyright Office)은 “인간의 창의적 개입이 없는 작품에는 저작권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명확히 밝혔습니다. 실제로 AI 이미지 생성 도구인 Midjourney를 활용해 제작된 만화책 삽화에 대한 저작권 등록이 거부된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이는 곧, AI가 혼자 만든 결과물은 법적으로 ‘무주공산’이라는 의미입니다. 한국의 경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특허청 등에서 AI 창작물의 저작권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 중이지만, 아직까지 법적으로 명문화된 규정은 없는 상황입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AI 결과물에 대해 일정 수준의 ‘인간 개입’이 확인될 경우에만 저작권을 인정할 수 있다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으나, 이 기준 자체가 모호하고 해석의 여지가 많습니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콘텐츠 제작자뿐 아니라 기업, 플랫폼, 심지어 소비자에게도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튜브에 AI로 만든 음악이나 영상을 올렸을 때, 그것이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지, 상업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지 여부조차 명확하지 않습니다. 또한, AI가 만든 콘텐츠를 상업적으로 활용한 뒤, 나중에 원작자의 스타일을 베꼈다는 이유로 법적 분쟁이 벌어지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AI의 창작물은 단지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을 넘어, 법적 리스크를 내포한 폭발물일 수도 있는 셈입니다. 결국, 현재의 법은 급변하는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수많은 창작물들이 사실상 “법적으로는 주인이 없는 상태”로 방치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공백은, 새로운 규제와 제도가 마련되기 전까지 계속해서 콘텐츠 산업에 긴장을 유발할 것입니다.
AI가 학습한 데이터, ‘공정한 사용’일까?
생성형 인공지능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합니다. 이러한 데이터에는 인터넷상에 공개된 수많은 텍스트, 이미지, 음성, 음악 파일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중 상당수는 저작권으로 보호받는 창작물입니다. AI 모델은 이 데이터를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패턴을 분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생성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바로 이 학습 과정에서의 저작권 침해 가능성입니다. 일부 기술 기업들은 AI가 학습에 사용하는 데이터가 ‘공정한 사용(fair use)’에 해당된다고 주장합니다. 공정한 사용이란 교육, 연구, 비평 등 특정 목적 아래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도 제한적으로 저작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원칙입니다. 하지만 생성형 AI는 그 결과물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는 기존의 공정 사용의 범주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AI가 생성한 결과물이 원저작물과 유사한 스타일이나 표현을 그대로 반영하는 경우가 많아, 이것이 원작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화가의 그림 스타일을 학습한 AI가 유사한 그림을 생성하거나, 작곡가의 음악적 특징을 흉내 낸 곡을 만들어낼 경우, 원작자의 창작권과 정체성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특히 많은 창작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AI 학습 데이터로 자신의 작품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일부 작가와 음악가들은 생성형 AI 기업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시작하였으며, 창작자의 동의 없는 학습 행위는 저작권 침해라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습니다. 결국 핵심은 ‘AI가 학습한 데이터의 출처와 사용 목적이 투명한가’에 달려 있습니다. 공정한 사용이라는 명목으로 창작자들의 권리를 무시한 채 데이터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방식은 더 이상 용납되기 어렵습니다. AI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 기술이 기반한 데이터의 윤리성과 법적 정당성도 함께 검토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향후 생성형 AI의 법적 기반을 마련함에 있어, 학습 데이터 수집과 활용 과정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제도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이는 단순히 법의 문제가 아니라, 창작자와 사용자, 기술 개발자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AI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기술과 법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기술의 발전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은 불과 몇 년 사이에 시와 그림, 음악, 코딩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수년간 연마해온 창작 영역을 대체할 수준에 도달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적 진보에 비해 법과 제도는 여전히 과거의 틀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러한 간극을 메우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법적 기준 마련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입니다. 생성형 AI의 창작물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그 결과물에 대한 권리를 누구에게 부여할 것인지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단순히 ‘인간이 아니므로 보호 대상이 아니다’라는 입장만으로는 빠르게 진화하는 현실을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또한,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법률가뿐만 아니라 기술 개발자, 철학자, 예술가 등이 함께 참여하여 종합적인 시각에서 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AI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공동 창작자’로 기능하게 된 상황에서는, 기존 저작권법의 개념 자체를 재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제적인 협력 또한 중요합니다. AI는 국경을 초월해 작동하기 때문에, 국가마다 다른 기준으로는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의 혼란을 막기 어렵습니다. 국제기구 차원의 통일된 지침이나 권고안이 마련되어야 하며, 국내 입법도 그 방향에 부합해야 실효성을 갖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기술 개발 기업들의 윤리적 책임 의식 강화도 필요합니다. 단지 더 많은 콘텐츠를 빠르게 생성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AI가 학습하는 데이터의 출처, 저작권 여부, 콘텐츠 생성의 투명성 등에 대해 기업이 먼저 기준을 마련하고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기술과 법의 간극은 하루아침에 메워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 균형 있는 논의와 제도화 노력이 이뤄져야만, AI 시대의 창작과 권리가 공존할 수 있는 건강한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맺음말: 법보다 앞서가는 기술, 뒤따라가는 사회
생성형 인공지능은 단순한 기술의 진보를 넘어, 인간 사회의 제도와 가치 체계를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특히 창작과 관련된 영역에서는 인간의 독창성과 창의성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이 도전을 받고 있으며, 그 결과물에 대한 권리와 책임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현재 법 제도는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사회 전반에 혼란과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는 단순히 법의 미비함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아직 이러한 기술 변화에 대해 충분한 논의와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기술이 사회를 선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 기술이 인간의 삶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도적, 윤리적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특히 AI가 창작의 영역에 깊숙이 침투하고 있는 현재, 그 결과물의 소유, 사용, 책임에 대한 분명한 기준과 원칙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법은 더 이상 기술의 결과를 수습하는 수동적인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의 사회는 법과 기술이 함께 설계되는 구조를 지향해야 하며, 이를 위해 전문가, 정책 입안자, 기술자, 창작자 모두가 머리를 맞대어 협력해야 합니다. AI가 만든 작품은 단순한 코드의 산물이 아닌, 인간 사회 전체의 가치관과 제도 속에서 평가받아야 할 결과물입니다. 기술은 이미 앞서 나갔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뒤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방향을 설정하고 균형을 맞추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