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비가 올까?’ 정도의 질문만 하던 인공지능이, 이제는 의사를 대신해 암을 진단하고, 시인을 대신해 시를 쓰며, 화가를 대신해 그림을 그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특히 딥러닝(Deep Learning) 기술은 인간처럼 사고하고, 판단하며, 창조하는 AI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성능과 눈부신 진보 이면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어두운 진실, 바로 ‘환경 비용’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편리하게 사용하는 AI 기술이, 실제로는 지구에 막대한 탄소발자국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합니다.
GPU가 돌아가는 동안, 지구는 타오르고 있다
AI가 ‘스스로 학습한다’는 말은 듣기엔 매력적이지만, 그 학습 과정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딥러닝 모델은 수많은 데이터셋을 처리하고, 그 안에서 패턴을 찾아내기 위해 수백만에서 수십억 개의 파라미터를 조정해야 합니다. 이 작업은 단순한 컴퓨터 몇 대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대규모 연산을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수천 개의 고성능 GPU(Graphics Processing Unit)가 동시에 돌아가야 하고, 이 장비들이 쉬지 않고 돌아가는 동안 막대한 전력이 소모됩니다. 예를 들어, 자연어 처리 분야의 대표적인 딥러닝 모델인 GPT-3의 학습에는 약 360톤 이상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는 항공기로 뉴욕에서 서울까지 왕복 약 300회 비행할 때 발생하는 배출량과 맞먹는 수준입니다. 이 정도의 전력 소모는 단순히 ‘컴퓨터가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차원이 아니라, 실제로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는 행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연산 작업은 대부분 24시간 내내 돌아가는 데이터센터에서 수행되며, 이 센터들은 기계들이 과열되지 않도록 막대한 양의 냉각 에너지까지 추가로 소비합니다. 많은 데이터센터들이 아직도 화석 연료 기반 전기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한 번 AI 모델을 호출하거나 테스트하는 그 순간조차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석탄이 타오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듯, AI 모델 하나를 ‘똑똑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그 대가는 지구의 온도를 높이는 형태로 되돌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기술의 발전에 감탄하고 있을 때, 지구는 조용히 타오르고 있을지 모릅니다.
AI가 클수록, 지구의 부하는 커진다
AI의 발전은 그 자체로 인류의 지식과 기술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이 진보의 무게는 상상보다 훨씬 무겁습니다. 특히 딥러닝 기반의 초거대 AI 모델들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그 성능의 놀라움에 감탄하는 동시에, 그 이면에 감춰진 ‘자원 소모의 실체’에 대해 눈을 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오픈AI의 GPT-3는 약 1750억 개의 파라미터(parameter)를 가진 초거대 모델입니다. 이처럼 거대한 모델을 학습시키기 위해서는 수십만 개의 GPU 연산이 필요하고, 이 연산을 위한 전기 소비량은 소형 원자력 발전소 한 달치 생산량에 맞먹는 수준에 이를 수 있습니다. 단지 한 번의 학습을 위해서 말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GPT-3처럼 대규모 모델은 학습 후에도 ‘지속적인 에너지 소모’를 유발합니다.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실시간으로 수많은 요청을 처리해야 하고, 이를 위해 AI는 항상 작동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따라서 AI는 학습 과정뿐만 아니라 운영과 유지보수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전력을 소비하며, 이 역시 탄소 배출의 주요 원인이 됩니다. 게다가 초거대 모델을 학습시키기 위한 데이터셋 또한 방대합니다. 인터넷에 존재하는 텍스트, 이미지, 영상 등 수십 테라바이트의 데이터를 정제하고 가공하는 데에도 엄청난 연산과 시간이 필요하며, 이는 또 다른 자원 소모를 야기합니다. AI가 점점 더 똑똑해질수록, 인간이 가늠하지 못할 정도의 ‘연산비용+전력비용+냉각비용’이 복합적으로 상승하는 구조인 것입니다.
AI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쓰이고 있나?
인공지능은 처음에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고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기술로 주목받았습니다. 질병을 조기에 진단하고, 교통사고를 줄이며, 재난을 예측하는 등 AI는 다양한 분야에서 ‘공익’을 위해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조금 다릅니다. 현재 상용화된 AI 시스템의 상당수는 상업적 이익을 중심으로 설계되고 운영되고 있습니다. 검색 결과를 개인화해 광고 클릭률을 높이고, 사용자의 소비 성향을 분석해 구매를 유도하며, SNS에서 이용자의 관심을 붙잡기 위해 끊임없이 콘텐츠를 추천하는 알고리즘들이 대표적입니다. 이 과정에서 AI는 사람을 위한 기술이라기보다는, 기업의 수익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더불어, AI를 학습시키는 데 필요한 방대한 데이터는 대부분 일반 사용자들이 온라인에서 무심코 남긴 행동과 흔적들로부터 수집됩니다. 본인의 동의 없이 취합된 정보들이 수백만 개의 파라미터로 가공되어 AI의 ‘지능’을 구성하지만, 정작 그 혜택은 기업과 기술 보유자에게 집중되는 구조입니다. 결국,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과연 AI는 지금 누구를 위해 존재하고 있으며, 무엇을 위해 이렇게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일부 기술 기업의 독점적 이익’이라면, 우리는 기술 발전의 방향을 다시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인공지능이 진정으로 인류 전체를 위한 기술이 되기 위해서는 공공의 이익을 중심에 두고 개발되고 활용되어야 하며, 특히 기술이 발생시키는 사회적·환경적 비용 또한 공동체와 함께 논의되어야 합니다. AI가 진정 인간을 위한다면, 그것은 단지 ‘더 똑똑한 기술’이 되는 것이 아니라, 더 윤리적이고 더 책임감 있는 기술이 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친환경 AI는 가능한가?
AI의 환경적 부작용이 알려지면서,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친환경 AI(Green AI)’라는 개념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효율적인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 AI 개발과 운영 전 과정에서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자는 움직임입니다.우선 기술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모델 경량화입니다. 이는 기존의 거대 딥러닝 모델보다 더 적은 연산으로 비슷한 성능을 내도록 구조를 단순화하거나 학습 과정을 최적화하는 방식입니다.예를 들어, 전통적인 GPT 계열 모델 대신 경량 트랜스포머(Lite Transformer)나 지식 증류(Knowledge Distillation) 같은 기술이 사용되며, 이는 처리 속도를 높이면서도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또한,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저전력 AI 전용 칩셋이 개발되고 있습니다.엔비디아(NVIDIA), 구글(Google), 애플(Apple) 등 주요 기업은 기존 GPU보다 훨씬 적은 전력으로 AI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전용 칩(예: Google TPU, Apple Neural Engine)을 선보이고 있으며, 이는 데이터센터의 전력 부담을 줄이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운영 측면에서도 진보가 있습니다.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 등은 AI 학습과정에 필요한 서버를 재생에너지 기반 데이터센터에 배치하거나, AI 학습 스케줄을 전력 수요가 낮은 시간대에 맞춰 자동 조정하는 방식으로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있습니다.이처럼 인공지능 기술 기업들 사이에서도 탄소중립을 위한 경쟁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뿐만 아니라, AI 연구 커뮤니티 내부에서도 인식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과거에는 오직 성능 향상에만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제는 연구 논문에서 모델 학습에 사용된 에너지량과 탄소 배출량을 명시하도록 요구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습니다.'논문 스코어'가 단지 정확도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성과 자원 효율성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새로운 윤리 기준이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시도들은 아직 초기 단계이며, 모든 AI 개발과정이 친환경적으로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제 “AI도 친환경적이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입니다.이는 단지 기술자의 몫이 아니라, 기업, 정부, 사용자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선택해야 할 문제입니다. 친환경 AI는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닙니다.그것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가치의 선택이며, AI가 인류에게 진정한 진보를 선물하기 위한 기본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이제 우리는 AI의 정확도와 속도만이 아니라, 그 이면의 자원과 환경까지 함께 평가하는 시대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맺음말: 지능의 진보가 환경의 퇴보를 의미해선 안 됩니다
AI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지능을 구현하며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지능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에서 지구의 자원과 에너지가 얼마나 많이 소모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분명히 인류에게 편리함을 선사하지만, 그 편리함이 환경을 파괴한 대가 위에 서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진보라 말할 수 없습니다. AI를 더 똑똑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라면, 이제는 그 똑똑함의 기준을 ‘성능’이 아닌 ‘책임감’으로 바꾸는 전환점이 필요합니다.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AI는 오히려 미래 세대의 삶을 위협하는 기술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AI가 만드는 효율성과 창의성뿐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지는 에너지 구조, 학습 과정, 그리고 자원의 사용 방식까지 함께 살펴봐야 할 시점에 도달했습니다. 기술은 결코 공짜가 아닙니다. AI가 아무리 무형의 존재처럼 느껴진다 해도, 그것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에는 분명한 물리적 비용과 환경적 흔적이 따릅니다. 지능이 높아질수록 우리가 감당해야 할 윤리적·생태적 책임도 커져야만 합니다. AI가 인간을 닮는다면, 인간처럼 환경을 걱정하고, 자원을 절약하고,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스마트 기술’의 조건이며, 기술과 자연이 공존하는 미래를 위한 첫걸음일 것입니다.